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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따듯한 시선으로 담아낸 서민들의 삶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박수근 작가의 전시는 국현과 양구국립박수근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대규모 회고전입니다. 대규모 회고전인만큼 박수근이 19세기에 그린 수채화 작품부터 51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제작한 유화까지 많은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덕수궁에 위치해있으니 산책 겸 전시볼 겸 다녀오기 좋아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2021.11.11 - 2022.03.01

 

전시 제목의 '나목'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했던 시기에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간 사람들과 그 시기를 이겨내고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을 상징합니다. 

12세 떄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박수군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 했습니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며 밀레가 그랬듯이 농촌의 풍경과 일상을 소개로 한 그림을 그려왔고, 거의 매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같은 대상을 여러 차례 반복해 그리며 가장 진실된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했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어머니가 아프시면서 박수근은 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이었습니다. 언제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그는 잡지에 삽화를 그려주는 등 생계형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길가에서(아기업은 소녀) 

아기 업은 소녀는 박수근이 가장 즐겨 그린 소재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더 어린 동생을 뒤에 업은 소녀의 모습은 그 시절 어려운 상황과 그 안에 녹아있는 따듯한 정서가 담겨진 작품인 것 같습니다. 

박수근은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당시 유행하던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평범한 이웃들의 생활을 진솔하게 화폭에 담아내며 개성적인 화법을 구사했습니다. 

그의 기법은 화면을 두껍게 바르고, 여러 겹의 층을 형성하는 일입니다. 박수근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우리나라에 추상화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그는 서양에서 들어오는 추상화를 공부하면서도 자신의 화풍을 고수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박수근만의 화법으로 담긴 당시 사람들의 가장 진실한 모습들은 작품을 보는 저에게까지 그의 절절하고 따듯한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따듯해지는 전시였습니다. 

"회색을 주조로 하는 층은 박수근 예술의 표정이며 그의 우직성과 더불어 미의 건강성을 빛내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것에 싫증이 나는 연대에서 그의 작품의 가치와 빛만이 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시간 속에서 살면서도 시간을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성. <흙과 같은 소박한 심성>. 1974

박수근의 아들, 딸. 굉장히 사랑스럽다
나목

"나는 워낙 추위를 타서인지 겨울이 지긋지긋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이 채 오기 전에 봄 꿈을 꾸는 적이 종종 있습니다. 이만하면 얼마나 추위를 두려워하는가 짐작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계절의 추위도 큰 걱정이려니와 그보다도 진짜 추위는 나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 추위입니다.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사람도 늙어가는 것이려니 생각할 때 오늘까지 내가 이루어놓은 일이 무엇인가 더럭 겁도 납니다.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에는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박수근, <겨울을 뛰어넘어>, 경향신문. 1961.1.19

<복숭아>

박수근은 작품에 굉장히 색체를 조심스럽고 아껴서 사용하는 작가인데, 이 작품에서는 풍부하게 색감을 사용했다. 

 

비평가들은 박수근을 '서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작가'라고 평가합니다. 1965년 박수근이 타계하고 1970년대 말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한 뒤에야 그의 그림이 국내에서도 인정받고, 거래되어 현재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평범한 견해를 지니고 있다." 판잣집이 줄지은 창신동 골목길에서 그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지만,  동시에 의연하고 당당합니다.